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답례품 뒤의 사람] 경기 안성시 | 놋반, 방짜유기를 만드는 사람들
- 2026.09.09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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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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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품 뒤의 사람] 경기 안성시 | 놋반, 방짜유기를 만드는 사람들
제사상 놋그릇의 변신, 가볍고 세련된 안성맞춤유기
공장 안에 들어서자 둔탁한 기계음이 귀를 울렸다. 커다란 연마석이 쉼 없이 돌아갔다. 작업자가 두꺼운 장갑을 낀 양손으로 유기 그릇을 움켜쥐고 회전판에 갖다 댔다.
쉬이익, 쉬이익. 금속과 연마석이 맞닿을 때마다 거친 소리가 튀었다. 작업대 위에는 공구와 연마재, 신문지가 뒤섞여 있었다. 바닥과 기계 곳곳에는 금속을 깎아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뜨겁고 어둡고 투박한 제조 공장에서 나와 10분 정도 떨어진 놋반안성방짜유기(주)(이하 놋반) 쇼룸으로 갔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 밥그릇과 접시, 수저, 술잔, 주전자까지 황금빛 유기가 반짝였다. 매끄러운 표면에 빛이 둥글게 흘렀다. 선반 위 제품들은 갓 닦은 보석처럼 윤이 났다. 조금 전 쇳가루 날리는 공장에서 본 금속과 같은 재료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처럼 거친 금속을 반짝이는 그릇으로 바꾸는 데 최재윤 이사는 수십 년을 매달려왔다. 그의 고민은 늘 같았다. 전통 유기의 원리를 지키면서도 현대 제조 설비로 더 안정적이고 정교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거였다.
불과 압력을 지나 황금빛 술잔이 되기까지
유기의 시작은 구리와 주석이다. 놋반은 구리 78%, 주석 22%를 배합해 전기로에서 약 1,300도까지 녹인다. 한국 전통 방짜유기에서 사용해 온 비율 그대로다.
1,300도에서 녹은 금속은 길고 두꺼운 판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뽑아낸 판은 두께가 약 13mm에 이른다.
그 판을 다시 압연기(금속판을 얇게 펴는 기계)에 넣는다. 커다란 롤러 사이로 금속판을 통과시키며 수차례 누른다. 제품에 필요한 두께까지 줄이는 과정이다.
과거 장인들이 달군 놋쇠를 망치로 끊임없이 두드려 넓고 얇게 폈다면, 이제 그 고단한 과정을 압연기가 대신한다. 그렇다고 기계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온도와 두께가 맞지 않으면 금속이 갈라지거나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어렵다.
▲ 놋반 최재윤 이사
온도도 맞아야 하고 두께도 맞아야 합니다.
수없이 실패하면서 하나씩 조건을 찾아온 거죠.
전통적으로 하던 원리를 버린 게 아니라,
그걸 현대 설비에서 어떻게 똑같이 구현할지 고민해 온 겁니다.”
그 고민은 결국 설비 자체를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다. 시중 기계로는 까다로운 유기를 다룰 수 없었다. 유기 생산에 적합한 설비를 개발했다. 금형(금속을 원하는 모양으로 찍어내는 틀)도 공정에 맞게 제작했다.
그 결과 여러 차례 나눠 해야 했던 성형 공정을 이제는 하나의 금형 세트로 처리한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방식이다.
압연을 마친 판은 제품 크기에 맞게 자른다. 그런 다음 다시 열을 가해 성형하기 좋은 상태로 만든 뒤 금형 위에 올린다.
프레스가 내려온다. 평평했던 판이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순식간에 움푹 들어간다. 조금 전까지 납작했던 금속이 어느새 잔과 그릇의 몸체를 갖춘다. 프레스에서 꺼낸 제품은 아직 표면이 검고 거칠다.
아직 그릇이라고 할 수 없죠.
그다음부터 깎고 다듬는 작업을 계속해야
우리가 보는 유기 색깔이 나옵니다.”
다음으로 CNC(컴퓨터에 입력된 수치대로 금속을 정밀하게 깎는 기계)와 선반(제품을 회전시키며 표면과 모양을 깎는 기계)을 거친다.
기계로 표면을 깎아내고 테두리와 모양을 정밀하게 잡는다. 조금씩 검은 껍질이 벗겨지고 안쪽에서 금빛이 드러난다. 프레스가 제품의 몸을 만들었다면 이 단계에서는 그 몸의 선과 두께를 정돈한다.
용해부터 압연, 프레스, CNC까지 현대식 설비가 공정 곳곳을 담당한다. 최재윤 이사는 그렇다고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마지막 손길
한 개 한 개 사람이 옮기고, 달구고, 프레스하고, 깎고,
마지막에 연마까지 다 해야 합니다.
힘으로 해야 했던 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뿐이지,
아직도 공정의 70~80%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합니다.”
마지막은 다시 사람의 손이다. 작업자가 제품을 하나씩 연마석에 갖다 댄다. 그릇을 돌리고, 기울이고, 다시 돌린다.
기계는 빠르게 회전할 뿐 어느 부분을 얼마나 갈아내야 하는지는 작업자의 손과 눈이 결정한다.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표면에 나타나는 결이 달라진다.
마침내 거칠고 검었던 금속 위로 조금씩 윤기가 돈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닦아내자 비로소 황금빛 유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공장 한쪽에는 완성된 술잔과 그릇이 차곡차곡 쌓인다.
“무겁고 관리하기 어렵다” 소비자의 목소리에서 시작한 변화
유기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용 그릇으로 사용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안성은 유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안성시 기록에 따르면 1600년대 초반부터 안성에 유기 장인 집단이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안성 유기는 뛰어난 품질로 명성을 얻어 ‘안성맞춤’이라 불릴 만큼 대표적인 지역 수공업품으로 자리 잡았다.
최재윤 이사가 유기의 제조공정과 설비를 다듬어왔다면, 이윤정 대표는 제품 기획과 개발,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함께하며 전통 유기를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왔다.
안성시 문화장인으로도 활동하는 이윤정 대표가 놋반을 통해 다시 살리고 싶은 것도 바로 ‘안성맞춤유기’의 옛 명성이다.

▲ 놋반 이윤정 대표
오랫동안 우리가 쓰던 생활 문화이고,
안성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산이에요.
최근에는 제가 바우덕이의 부채를 유기로 재해석한 작품이
대한민국 관광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만큼 유기는 안성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분이 ‘유기’하면
무겁고 오래된 제사상 놋그릇부터 떠올려요.
저는 그 인식부터 바꾸고 싶었어요.
유기로도 얼마든지 일상에서 예쁘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어요.”
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윤정 대표는 직접 소비자를 만났다. 약 1년 동안 전국의 박람회를 찾아다녔다. 소비자가 유기의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 들었다.
‘무겁다’, ‘관리하기 어렵다’, ‘금방 까매진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게 확인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제품 제작에 반영했다.
놋반은 전통 유기의 특성은 유지하면서도 현대 소비자가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두께와 무게를 조절했다. 그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도 적용했다.
전통 반상기에 머물지 않고 술잔과 수저, 접시와 주전자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선보였다. 이윤정 대표에게 전통을 잇는다는 건 옛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일이 아니다. 트렌드에 맞게 감각적이고 모던한 생활 문화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청동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보면 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소재로 그릇뿐 아니라
여러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표적인 게 유기 괄사다. 괄사는 얼굴이나 목, 어깨 등을 문질러 마사지할 때 쓰는 도구다.
놋반 유기 괄사는 유기 특유의 묵직한 무게감과 구리 성분에서 나오는 항균성이 특징이다. 적당한 무게 덕분에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압력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피부에 직접 닿는 도구인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좋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처럼 유기의 대중화를 꿈꿔온 놋반에 고향사랑기부제는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는 계기였다.
안성시 답례품으로 등록한 ‘안성맞춤 방짜유기 2인 술잔 세트’가 2024년 122건, 약 400만 원의 실적으로 인기 답례품 8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2025년에는 609건, 1,800만 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늘며 안성시 전체 답례품 3위까지 올라섰다. 쌀과 돼지고기 같은 대표 농축산물 사이에서 전통 공예품인 유기가 상위권에 오른 거다.
이윤정 대표는 판매 실적보다는 ‘안성맞춤유기’를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안성에 이런 유기가 있었구나’ 하고 다시 봐주시는 분도 생겼어요.
그게 참 반갑습니다.
술잔 하나를 써본 경험이 다른 유기 제품을 찾는 계기로
이어질 수도 있잖아요.
저희는 유기를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게 결국 ‘안성맞춤유기’를 다시 사람들 생활 속으로
데려오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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