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지정기부, 그 후] 경기 안성시 | “백두산은 언제 가요?” 발달장애인 20명의 끝나지 않은 도전
- 2026.09.03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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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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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기부, 그 후] 경기 안성시 | “백두산은 언제 가요?” 발달장애인 20명의 끝나지 않은 도전


바람이 한라산 정상부를 훑고 지나갔다. 멀리 펼쳐진 풍경은 구름과 운무에 흐릿하게 잠겼다. 한라산 정상부로 이어진 계단 끝에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런 풀과 검은 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하늘색 단체복 입은 참가자들이 한 명씩 올라왔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며 아직 오르지 못한 사람을 기다렸다.
한참 뒤 계단 아래에서 마지막 참가자 이단비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비 씨는 얼마 전 수술한 무릎이 욱신거리는 듯 자꾸만 무릎으로 손이 갔다. 옆에 있던 동행자가 단비 씨 손을 꼭 잡아줬다.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계단 쪽을 바라봤다. 마침내 단비 씨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정상부에 올라섰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두 달 만에 목표액 조기 달성
시작은 작은 아이디어였다. 안성시와 장애인체육회가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발달장애인에게 새로운 도전의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발달장애인 한라산 등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재원은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로 마련했다.
2025년 7월, 5천만 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다. 두 달 만에 목표액을 조기 달성했다. 이후에도 기부가 이어졌다. 2025년 말까지 2,000명 이상이 약 2억 6,900만 원을 기부했다. 체육회 박준연 과장은 기부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 박준연 안성시장애인체육회 과장
아무래도 한라산을 올라야 하니까 신청했다고 다 갈 수는 없었죠. 체력 테스트도 하고 보호자와 면접도 하면서 건강 상태나 운동 능력 등을 살펴 최종적으로 20명을 선발했습니다.”
이후 한라산 등반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이 과정부터 지역 대학이 함께했다. 한경국립대 스포츠과학과 학생들이 훈련을 도왔다. 동아방송예술대는 훈련 때부터 한라산 등반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또 산에 다녀오는 것으로 끝내기보다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부터 한라산에 오르는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첫 훈련은 8월 23일, 금광호수 주변을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안성 일대의 국사봉과 비봉산, 고성산 등으로 장소를 옮겼다. 처음에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었지만, 훈련을 거듭할수록 흙길과 돌길, 긴 계단을 오르는 시간을 늘렸다. 물론 참가자마다 속도가 달랐다.


지도자와 봉사자들은 옆에서 걸음을 맞추며 각자의 체력과 움직임도 함께 살폈다. 제주로 떠나기 이틀 전인 10월 18일까지 모두 여덟 차례 훈련을 이어갔다. 참가자 김종혁 씨의 어머니 김을순 씨도 훈련 대부분을 함께했다.
▲ 김종혁 씨와 어머니 김을순 씨
그래도 종혁이가 생각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줘서 한라산 오를 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참가자 모두가 본인 의지로 참여한 건 아니었다. 부모 등 보호자 권유로 함께한 이도 있었다. 박 과장은 훈련 초반엔 산에 오르기 싫어하는 참가자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여덟 차례 함께 산을 오르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 땀 흘리는 시간이 쌓이면서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 의지도 조금씩 붙었다. 제주행이 가까워질 무렵엔 “한라산 빨리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10월 20일, 마침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달랐던 도착점, 각자가 오를 수 있는 만큼
2025년 10월 21일 새벽 5시, 참가자와 가족, 운영진이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산악전문가 3명도 함께했다. 체육회는 이들을 대열의 선두와 중간, 후미에 배치했다.

그 사이에서 직원과 자원봉사 학생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걸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속도에 맞춰 대열을 나눠 움직였다. 산악전문가들은 무전기로 앞뒤 상황을 주고받으며 전체 흐름을 살폈다.

초반에는 숲이 이어졌다. 하늘색 옷을 맞춰 입은 참가자들이 나무 사이로 난 길을 줄지어 걸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가 낮아지고 시야가 열렸다. 진달래밭대피소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희뿌옇게 흐려지고 바람도 거세졌다.


대피소에 도착하자 정상 통제 가능성을 알리는 안내가 나왔다. 정상에 도전할 참가자들은 점심 식사를 미루고 서둘러 다시 산을 올랐다. 위로 갈수록 기온도 떨어졌다. 준비해 간 우비를 바람막이 위에 겹쳐 입은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정상까지 올라야 하는 건 아니었다. 체육회는 참가자의 체력과 운동 능력을 고려해 각자 갈 수 있는 만큼 산을 오르도록 했다. 김종혁 씨는 진달래밭대피소까지 갔다. 함께 산을 오른 김을순 씨에게는 그곳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노란색 수건을 두른 김종혁 씨와 뒤따라가는 어머니 김을순 씨
▲ 백진주 씨
백진주 씨도 보호자와 지도자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속도로 산에 올랐다.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한라산은 진주 씨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뜻밖의 일도 생겼다. 황호연 씨는 제대로 된 등산화 대신 일반 운동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 오래 걸으면서 발뒤꿈치가 심하게 까졌다. 체력은 더 걸을 수 있었지만 결국 발 때문에 먼저 산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대피소에서 걸음을 멈췄고, 누군가는 그보다 더 올라갔다. 같은 산을 올랐지만 저마다 도착점은 달랐다. 박준연 과장에게 그날 가장 오래 남은 참가자는 이단비 씨였다. 무릎 수술을 받은 상태였던 단비 씨는 산행 도중 여러 차례 하산을 권유받았다.
이번엔 마라톤, 다음엔 백두산?
한라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2025년 12월 16일, 스타필드 안성 메가박스에서 <우리들의 한라산 도전여행>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열었다. 참가자와 가족, 김보라 안성시장을 비롯해 지역 사회단체와 대학 관계자 등 약 150명이 객석을 채웠다.

두 달간의 훈련과 한라산 등반 과정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나타날 때마다 “나 나왔다!”를 외치며 즐거워했다. 상영회를 준비한 박준연 과장도 영상을 보며 울컥했다고 했다.

참가자들과 부모님들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많이들 감동적으로 봐주셨습니다.”
한라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체육회가 올해 새로 시작한 건 달리기다. 사랑의열매 공모에 도전해 약 2천만 원을 확보했다. 지난 7월부터 발달장애인 약 15명이 매주 토요일 종합운동장과 안성천 일대를 달린다. 짧은 거리부터 시작해 앞으로 하프마라톤 21km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한라산에 다녀온 참가자 일부도 이번 러닝크루에 다시 참여했다. 박준연 과장은 이들을 보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태도를 느낀다.
한라산을 한번 도전해 봤다는 경험 자체가 이분들한테는 꽤 큰 자신감이 된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러닝하는 게 사실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데, 다들 열정이 대단합니다.”

▲ 다큐멘터리 상영회 자리에서 격려사 하는 김보라 안성시장
다음 목표는 백두산이다. 다큐멘터리 상영회 날, 김보라 시장이 “다음에는 백두산에 한번 도전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한라산에 올랐던 참가자들은 박준연 과장만 만나면 “선생님, 저희 백두산 언제 가요?”라고 묻는다.
어머니 김을순 씨도 백두산 도전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사실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는 외출하는 것 자체가 일이다. 가까운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아들과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가서 며칠을 보내고, 함께 한라산까지 올랐다.
▲ 김을순 씨
산에 얼마나 올라갔느냐를 떠나서 아들이랑 이렇게 제주도에 와봤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정말 특별한 일이었어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을 포함해 발달장애인들이 이런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기꺼이 마음을 보태주신 기부자분들께 이 자릴 빌려서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 제주도에서 많은 추억을 남긴 김종혁 씨와 어머니 김을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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